-
목차
1. 조선의 기와, 그저 지붕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건축에서 기와는 단순한 기능적 요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비를 막고 햇빛을 가리는 역할 외에도 기와는 건축물의 ‘얼굴’이자 신분의 상징, 그리고 때로는 신비한 보호물로 여겨졌습니다. 한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 조선의 건축은 결코 무심하게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철학, 자연관, 인간관계, 사회제도 등이 조화롭게 스며들어 있었다.
기와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뾰족하게 솟은 추녀마루, 가지런히 이어진 암기와와 수키와, 기와의 끝에 새겨진 문양까지도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상징의 언어였습니다. 왕실과 관청, 양반가에서 사용한 청기와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일반 백성은 초가지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법적으로 기와 사용에 제한이 있었을 만큼, 기와는 곧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기와는 건축적 요소를 넘어선 사회적 도구였습니다.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기와지붕 아래,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생각과 질서, 그리고 세계관이 깃들어 있던 것이죠.
2. 기와의 종류와 모양에 담긴 계급과 상징
기와는 겉으로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형태와 문양을 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와는 크게 암키와(암기와)와 수키와(수기와)로 나뉘며, 그 외에도 장식용으로 사용된 막새기와(와당), 마루 기와, 귀기와 등이 있었습니다. 이 각각의 기와는 모양부터 색상, 위치에 이르기까지 역할과 의미가 분명했다. 예를 들어, 막새기와에는 종종 동물 문양이나 불교적 상징이 새겨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삼족오(三足烏)’ 문양이 있는데, 태양을 상징하며 왕실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반면 백성들이 사는 민가에는 문양이 없는 기본적인 기와만 허용됐습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기와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명시되어 있었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기와는 명확한 신분제의 시각적 언어였던 것입니다.
또한, 기와의 수량과 배열 방식도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달랐습니다. 대궐이나 사찰의 기와지붕은 수천 개에 달하는 기와가 정교하게 맞물려 웅장한 지붕을 형성했으며, 이는 자연을 제어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려는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선의 기와는 기능을 넘어 ‘철학을 품은 건축재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기와 밑에 숨겨진 부적과 미신의 세계
조선의 기와 아래에는 상상도 못 한 것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부적’입니다. 전통 건축을 복원하거나 해체할 때, 기와나 서까래 밑에서 종종 붉은 글씨가 적힌 종이나 묶음이 발견되곤 합니다. 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건물을 지을 때 액운을 막기 위해 사용한 부적이었던 것이다.
건축을 담당했던 장인들, 특히 ‘목수’와 ‘와장(瓦匠)’이라 불리던 기와공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오는 미신과 민간신앙을 존중하며 건축에 반영했습니다. 불길한 방향을 피하고, 화재나 귀신, 도적 등을 막기 위한 부적을 집 안의 특정 위치에 숨겨두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기와 밑이나 기둥 사이에 숨긴 부적은 집을 짓는 이의 마음이 깃든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풍습이 단지 민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궁궐과 사찰 같은 공공건물에서도 유사한 부적이 발견되곤 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여전히 신비한 힘에 대한 믿음이 건축 속에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4. 궁궐과 사찰 기와,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예술
기와는 조선 건축의 기능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담당한 소재입니다. 특히 궁궐과 사찰의 기와는 그 섬세함과 예술성 면에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종묘, 해인사 등 주요 건축물의 기와를 보면, 수천 개의 기와가 정교하게 맞물려 리듬을 이루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결코 단시간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수년 동안 흙을 개고, 태우고, 정제하고, 문양을 새겨 넣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기와가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궁궐 기와에는 황토와 짚, 석회 등을 비율에 맞게 배합해 만든 고급 기와가 사용되었으며, 표면을 유약으로 코팅해 강도와 방수력을 높였습니다.
이 작업의 핵심은 바로 ‘와장’이라는 직업군이었습니다. 완장들은 도제식 교육을 통해 수십 년의 기술을 물려받았고, 자신만의 문양과 기법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유명한 화장의 이름이 기록에 남겨지기도 했습니다. 기와는 그저 찍어낸 것이 아니라, 수공예 예술품이었던 것입니다.
5. 현대 건축과 조선 기와의 연결고리
오늘날의 건축에서 기와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한옥 열풍과 함께 그 아름다움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복궁이나 전주 한옥마을처럼 전통 기와지붕을 보존한 장소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최근에는 기와를 현대식 재료로 재해석한 ‘신한옥’ 건축도 등장하고 있으며, 옛 기와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미적 감각은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환경 건축이 각광받는 시대에 기와는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흙과 천연재료로 만들어지는 기와는 자연 환기, 열 차단, 방음 기능에서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태양광 패널과 접목된 기와도 등장하면서, 전통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이처럼 기와는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건축의 가교입니다. 조선시대 기와에 담긴 철학과 기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는, 우리가 전통을 계승하는 가장 창조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6. 기와를 통해 보는 조선인의 세계관
조선의 기와는 단순한 지붕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이자, 사람들의 생각과 질서를 품은 기록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는 단순했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상징, 예술의 산물, 미신의 도구, 건축의 꽃—이 모든 것이 기와 한 장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기와 아래에 숨겨진 조선의 비밀을 들여다보면, 조선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들의 두려움, 소망, 질서,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이 고스란히 기와 위를 흐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전통은 단지 옛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조선의 기와를 다시 바라본다면, 우리는 단순한 건축재료가 아닌, 인간의 삶과 정신을 담아낸 위대한 문화유산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국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의 침실 위치, 알고 보면 완벽한 과학적 설계 (0) 2025.03.27 초가집이 더 과학적? 전통 건축의 놀라운 진실 (0) 2025.03.27 궁궐 건축에 숨겨진 암호, 이제야 그 뜻을 알았습니다 (0) 2025.03.27 경복궁에 숨겨진 상징, ‘이것’의 진짜 의미를 아시나요? (0) 2025.03.26 한옥 지붕 곡선의 비밀, 인간에게 주는 놀라운 효과 (0) 2025.03.26